야화 54화
야화 54화
2월 하순.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으스스 춥고 날씨까지 음산하였다. 이런 날일수록 도방(賭房)은 북적거린다. 나는 복래도방(福來賭房)의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참새 방아간 드나들 듯 요즘은 도방에 드나드는 나날이었다.
24~5세의 훤칠하게 생긴 여인이 양쪽 팔을 걷고, 한쪽 다리는 의자 위에 올려 놓고 치마를 걷어 부쳤는데 허벅지의 속살이 훤히 들어나고, 천내군(穿內裙)이라고 하는 붉은 속치마가 살짝살짝 내 비쳤다. 왼쪽 팔에는 자랑이라도 하듯 붉은 수궁사가 찍혀 있었다.
적사갈(赤蛇蝎).
사갈 같은 여인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다음 날 시체가 되어 강물 위에 떠 오르거나 아니면 풀 숲 어딘가에 쓰러져 죽어 있어야만 했다. 항상 손바닥만한 붉은 속치마인 천내군을 입고 있다고 해서 적사갈 이라고 불리는데, 돈을 잃었다 하면 허연 다리통을 들어 낸다.
주사위를 흔들어 대는 물주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흔들려야 할 물주 보다는 맞은 편에 있는 노름꾼 들이 먼저 흔들리고, 분위기는 후끈 달아 오른다.
와~ 하는 함성이 터지고, 적사갈이 의자 위에 걸치고 있던 다리통을 내리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밑천을 털린 게 틀림 없었다.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던 적사갈의 손이 내 허리춤을 뒤져 왔다. 허리춤에 넣어 둔 은 덩어리를 훔칠 속셈이었던 것이다.
"어딜!... 누님! 내 밑천을 털어 가려고 하면 나는 어쩌란 말이오"
내가 소리를 질렀을 때는, 적사갈의 팔목을 내가 꽉 붙잡고 있었고, 적사갈의 손은 내 사타구니에 가 있었다. 노름판의 시선이 모두 적사갈과 나에게 쏠렸다.
"이 자식아 내 손 놓지 못해?..."
"누님이 내 밑천을 털려고 하는데, 그럼 그냥 있으란 말이오?"
와아~ 하고 웃음 소리가 터지며, 노름판은 뒷전에 두고 노름꾼들이 우리 두 사람을 에워쌌다. 마치 적 사갈이 내 양물을 만지려는 것을 내가 못 만지게 하고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어디서 이런 개 자식이 나타났어?..."
"누님! 내가 개 자식이라면, 벌서 누님을 엎어 놓고 올라탔을 것이오...개자식이 아니라 망아지란 말이외다"
다시 와아~ 하는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오고, 적사갈도 내가 누님누님 하면서 자기를 난처한 꼴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뭐야? 개 새끼가 아니고 망아지란 말이지... 좋다 어디 망아지 밑천 좀 보자"
"아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밑천을 내 보이라는 말이오?"
"홋 홋 홋... 개새끼 밑천이 아니라 망아지 밑천이라면서? 홋 홋 홋..."
"낄 낄 낄...만약 망아지 밑천이면 어찌 하겠소?"
"뭐야? 홋 홋 홋... 망아지 밑천이라면, 이 누님이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홋 홋 홋...얼른 내 손목을 놓지 못하겠니?..."
"누님이 내 밑천을 털려고 하고서는, 이제 와서 손목을 놓아 달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만약 내 밑천이 망아지 밑천이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겠소?"
"홋 홋 홋... 비록 내 팔에 수궁사가 찍혀 있다고는 하지만, 이 누님도 망아지 밑천을 보아서 안다는 말이다... 그런 밑천을 매달고 다니는 사내가 어디 있단 말이냐?"
"개자식이란 말을 듣고 가만이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만약 내 밑천이 망아지 밑천만 하다면, 누님이 내 밑천 대가리를 한 번만 쓰다듬어 주면 되오...그렇게 하겠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꼭 그래야만 하겠느냐?"
"그럼 개 자식이란 말을 듣고도 그냥 넘어 가란 말이오?"
"좋다! 개자식이란 말은 이 누나가 잘못했다 취소다"
"낄 낄...고맙소...그런데 밑천을 만지려던 손이 그냥 빈 손으로 가기에는 서운하지 않겠소? 한 번 쓰다듬어 보기나 하쇼... 누가 아오 ? 재수가 있어서 잃었던 돈을 몽땅 딸지..."
"이 자식아! 밑천이 떨어졌단 말이다"
"여자 몸에도 밑천이 매달려 있소? 누님은 떨어져 나갈 밑천이 매달려 있단 말이오?"
와아~하고 다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사갈의 눈꼬리가 올라가기 시작 했다. 이렇게 되면 일이 커진다는 것을 나도 안다.
"누님! 떨어진 밑천 대신에 내가 은 한 덩이를 주겠소...그것을 밑천으로 한다면, 아마 운수 대통일 것이오"
"은 한 덩어리를 주겠다고?"
"그 대신 기왕 시작했던 일이니, 옷 위로라도 대가리 한 번은 쓰다듬어 줘야 하지 않겠소?"
"좋다! 그거야 못 할 것 없다"
적사갈이 불룩 천막을 치고 있는 내 아랫도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헉 하고 헛 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은 역시 고수다웠다. 나는 허리춤에서 은 한덩어리를 얼른 꺼내서 적사갈 손에 쥐어 주었다.
"낄 낄 낄...누님이 분명 이길 것이오... 그러나 한 번 만진 약발은 세 번 이상은 듣지 않을 것이오"
"좋아 좋아! 동생 말을 한 번 믿어 보지... 자아 뭘 하고 있어? 단 둘이 한 번 붙어 보자"
"흐흐 흐흐...단 둘이 붙으려면 망아지하고나 붙어 보 슈...어디다 걸겠소?"
"이 자식아! 그 동안 짝이 없어서, 홀 짝 홀 짝 헤매고 다녔지만, 짝이 생겼으니 짝이다"
종지 뚜껑을 열어 보니 짝이 나왔다. 와 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신이 난 적사갈이, 딴 은 덩이를 합쳐 두 덩어리를 또 짝에 걸었는데, 이번에도 이겼다. 함성이 다시 터지고, 네 덩어리가 된 은을 마지막까지 짝에 걸었다. 물주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더니 종지 뚜껑을 열었는데 이번에도 짝이 나왔다.
여덟 개의 은 덩어리를 품 안에 쑤셔 넣은 적사갈이 나에게 다가 오더니, 내 손목을 덥석 쥐었다. 그리고 무작정 나를 끌고 나왔다.
"누 누님 왜 이러 슈... 이러다가는 내일 아침 강물 위에 시체가 되어 떠 오르는 것 아니오?"
"시치미 떼지마! 어떻게 해서 세 번 모두 이길 수 있었지?"
"낄 낄 낄... 내 밑천이 떨어지면 되겠소? 내 밑천을 한 번 만지면, 세 번은 약발이 듣는 다고 하지 않았소"
"그럼 두 번을 만지면 여섯 번은 이길 수 있다는 말이야?"
"아마 그럴 것이오"
"홋 홋 홋... 그럼 밤 새 만지고 나면, 다음 날은 운수대통이겠구나?..."
"혼인도 하지 않은 남녀가, 어떻게 밤새 같이 있다는 말이오"
"혼인을 하면 되잖아"
"낄 낄 낄...누님은 영원한 누님일 뿐이오... 누님하고 동생이 어떻게 혼인을 한다는 말이오"
"너 죽고 싶어?!...어떻게 세 판을 거듭 이길 수 있었는지 실토를 한다면, 혼인을 하자는 말은 취소를 할께"
"이거야 원... 한 번 만지면 세 판은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이 자식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냔 말이다"